요한일서 3장 18절  John의 칼럼 - 말이 아닌 삶으로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사랑한다는 말은 쉽다. 입술을 열어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데는 단 1초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말이 끝난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사도 요한은 이천 년 전, 사랑이 넘쳐흐른다고 자부하던 신앙 공동체를 향해 이 짧고 날카로운 한 마디를 던졌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라." 이 권면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헬라어 원문에서 요한이 사용한 사랑의 단어는 아가파오(ἀγαπάω, 아가파오)이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끌림이나 호감이 아니라, 자기를 내어주는 희생적이고 의지적인 사랑을 뜻한다. 그리고 요한은 이 사랑을 두 가지 방식으로 대비시킨다. 하나는 로고(λόγῳ, 로고)와 글로세(γλώσσῃ, 글로세), 곧 말과 혀로 하는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에르고(ἔργῳ, 에르고)와 알레테이아(ἀληθείᾳ, 알레테이아), 곧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사랑이다. 요한은 말을 전면 부정한 것이 아니라, 말에서 멈추는 사랑을 경계한 것이다.

존 웨슬리는 이 구절을 주해하면서, "말로만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의 일반적 교리가 옳다고 인정하는 데 그치는 것이고, 혀로만 사랑한다는 것은 자비롭고 인도적인 성품을 고백하면서 거기에 머무는 것"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러면서 "행함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인도적이고 자비로운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며, 진실함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그 마음의 성향을 실제로 느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웨슬리는 평생 이 원리를 삶으로 실천했다. 그는 설교단에서 선포한 하나님의 사랑을 탄광촌 노동자들의 손을 잡고, 감옥에 갇힌 죄인들을 찾아가고, 가난한 이들의 문을 두드리는 발걸음으로 증명했다.

우리 시대는 표현의 홍수 속에 산다. SNS에는 위로의 말과 응원의 댓글이 넘친다. 하지만 정작 옆집에 홀로 사는 어르신의 끼니가 어떤지, 직장을 잃고 울고 있는 이웃의 형편이 어떤지에는 눈을 감는 경우가 많다. 요한의 도전은 여기서 빛난다. 진짜 사랑은 화면을 닫고 현관문을 여는 것이다. 전화기를 들고 "밥은 먹었어요?"라고 묻는 것이다. 눈물을 닦아주는 손이 되는 것이다.

성도의 삶에서 사랑은 언제나 구체적이어야 한다. 추상적인 사랑은 아무도 따뜻하게 하지 못한다. 예수님은 말씀만 선포하신 분이 아니라, 나병 환자의 몸을 손수 만지시고, 세리의 집에 직접 들어가시고, 십자가 위에서 목숨을 내어놓으신 분이다. 그 행함과 진실함의 사랑이 우리를 구원했다. 우리도 그 사랑을 받았으니, 이제 그 사랑을 흘려보내야 한다.

이 구절이 오늘 우리에게 묻는 것은 단 하나다. "당신의 사랑은 어디에 있습니까?" 입술에 있습니까, 아니면 두 손과 두 발에 있습니까? 말로 사랑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말에서 멈추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말을 넘어 행함으로, 고백을 넘어 진실한 삶으로 나아간다. 오늘 내 삶 속에서 한 걸음 더 내딛는 사랑이 있기를 바란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과 혀"로만 사랑을 표현하고 있지는 않은지, 최근 내 삶에서 구체적인 사랑의 행동은 무엇이었는지 돌아봅시다.

2. 웨슬리처럼 신앙의 고백이 삶의 현장과 일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어떤 삶의 태도를 바꿔야 할까요?

3. 내가 지금 당장 "행함과 진실함"의 사랑으로 다가갈 수 있는 한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고, 오늘 그 한 걸음을 내딛어 봅시다.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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