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3장 16절 John의 말씀 묵상 - 하나님의 성전, 성령의 거처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고린도전서 3장 16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귀히 여기시며, 어떤 놀라운 은혜를 주셨는지 깊이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선언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각자가 거룩한 성전, 즉 하나님께서 거하시고 임재하시는 장소라는 깊은 영적 진리를 드러냅니다. 

먼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표현은 구약의 성전을 떠올리게 합니다. 구약 시대에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백성들은 성전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영광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제 성전이 더 이상 돌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 즉 믿는 자들의 마음과 삶이라고 선포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새 언약의 시대가 열린 결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직접 교제할 수 있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신다”는 놀라운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단순히 우리 곁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이는 우리의 삶이 더 이상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 쓰임 받는 삶이어야 함을 일깨웁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말과 행동, 생각과 마음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반영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존 웨슬리(John Wesley)의 관점에서 이 말씀을 묵상할 때, 그는 성도들이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웨슬리는 성령의 사역이 단순히 감정적인 체험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만드는 능력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통해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죄를 이기고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거룩함을 지키고 있는가? 내 삶은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면, 우리는 이 성전을 더럽히거나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유혹과 죄악이 우리를 흔들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기억하며 그분의 힘을 의지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는 서로를 귀히 여기고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분열과 다툼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바울은 그들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부르며 하나 됨과 거룩함을 회복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우리도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세워주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깨닫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성전으로 삼으시고 성령으로 채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룩한 성전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여,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성도가 됩시다.

말씀 묵상에 대한 질문:

1. 나는 내 삶이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2. 성령의 내주하심을 날마다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3.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귀히 여기며 사랑으로 섬기고 있는가?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저희를 주님의 성전으로 삼아 주시고 성령으로 채워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주님의 거룩함을 반영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의 삶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마태복음 25장 40절 John의 칼럼 -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사랑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빛이다. 마태복음 25장 40절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이웃, 특히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푼 사랑과 선행이 곧 그분께 드리는 헌신임을 분명히 말씀하신다. 존 웨슬리(John Wesley)의 관점에서 이 말씀은 단순한 도덕적 가르침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 전반을 관통하는 실천적 신앙의 핵심이다. 웨슬리는 신앙이 개인적 경건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책임과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원칙을 삶으로 보여주었다.

“지극히 작은 자”란 누구인가? 예수님은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억압받는 자를 가리키신다. 이들은 세상의 기준으로는 보잘것없으나, 하나님의 눈에는 그리스도의 형제요, 귀한 존재다. 웨슬리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모든 사람, 특히 연약한 자들에게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가난한 이들을 방문하고, 병든 자들을 돌보며,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려는 거룩한 사명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까? 현대 사회는 여전히 가난, 불평등, 소외로 가득하다. 웨슬리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문제 앞에서 무관심하거나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우리의 선행이 그분께 직접 드리는 헌신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웃에게 베푼 작은 친절, 나눔, 위로의 말 한마디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된다. 예를 들어, 이웃의 필요를 살피고,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들을 돕거나, 소외된 이들과 시간을 나누는 것은 곧 예수님을 섬기는 행위다.

웨슬리는 또한 “거룩한 생활”을 강조하며, 신앙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참된 믿음이 아니라고 경고했다. 그는 성경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교회를 꿈꿨다. 마태복음 25장 40절은 우리에게 도전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일상에서 이웃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과연 지극히 작은 자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의 시간, 물질, 마음을 나누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

이 말씀은 또한 심판의 기준을 제시한다.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우리의 믿음을 행위로 평가하신다. 웨슬리는 이 점을 깊이 깨닫고, 신앙과 행함이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그 은혜를 세상에 나누라”고 가르쳤다. 우리의 작은 선행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씨앗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이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고, 약한 자를 돕고, 정의를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한다. 이는 단지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예수님을 섬기는 기쁨이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사명이다. 웨슬리의 삶처럼, 우리도 사랑과 헌신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칼럼에 대한 질문:

1. “지극히 작은 자”를 오늘날의 맥락에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2. 존 웨슬리의 관점에서, 신앙과 사회적 책임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3. 이 구절을 바탕으로,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랑의 행동은 무엇인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마태복음 25장 40절 John의 강해 설교 -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사랑의 사역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장 40절에서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푼 사랑이 곧 그분께 드리는 섬김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존 웨슬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실제적인 섬김과 나눔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설교는 작은 자를 향한 우리의 책임과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삶을 탐구합니다.

1: 지극히 작은 자는 누구인가? (마 25:40a)

예수님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를 언급하십니다. 이는 가난한 자, 소외된 자, 고통받는 자를 뜻합니다. 웨슬리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존귀하다고 보았습니다. 작은 자는 사회적 약자뿐 아니라 영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포함합니다.  

-관주: 누가복음 10:30-37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강도 만난 자는 도움이 필요한 “작은 자”의 상징입니다. 사마리아인은 국적과 신분을 초월해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이처럼 작은 자는 우리의 편견을 넘어선 이웃입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는 누가 우리의 이웃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노숙인, 난민, 혹은 정서적으로 상처받은 이웃이 우리의 섬김을 기다립니다. 웨슬리처럼 그들을 그리스도의 형제로 대하며 사랑을 실천합시다.

2: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그리스도께 한 것이다 (마 25:40b)

예수님은 작은 자에게 한 선행이 곧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섬김의 대상이 그리스도와 하나 됨을 보여줍니다. 웨슬리는 실천적 성결을 강조하며, 사랑의 행위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고 가르쳤습니다.  

-관주: 요한일서 4:20-21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경고합니다. 이는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적용: 우리의 섬김은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교회는 물질적 도움뿐 아니라 시간을 내어 경청하고 위로하며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웨슬리의 가르침처럼,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반영합시다.

3: 섬김의 보상과 하나님의 나라 (마 25:34-40)

마태복음 25장은 최후의 심판에서 의인들이 상을 받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작은 자를 섬긴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됩니다. 웨슬리는 이런 섬김이 성결한 삶의 열매이며,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는 길이라고 보았습니다.  

-관주: 히브리서 13:16은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 여겨집니다. 작은 자를 섬기는 행위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는 실천입니다.  

-적용: 우리의 섬김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지역 사회의 필요를 돌아보고, 실질적인 도움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웨슬리의 사회적 성결 사상을 따라, 가난한 자와 함께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맺는말[Conclusion]:

마태복음 25장 40절은 우리의 신앙이 실천으로 드러나야 함을 일깨웁니다. 존 웨슬리는 성경적 사랑이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를 향한 구체적인 섬김에서 시작된다고 보았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예배이며,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맛보는 길입니다. 우리의 작은 선행이 하나님의 큰 계획 안에 있음을 기억합시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은 이것입니다: 오늘 나는 누구를 위해 작은 사랑을 실천할 것인가? 교회는 이웃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웨슬리의 열정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사랑의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 우리의 섬김은 하나님 나라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설교에 대한 질문:

1. 나의 일상에서 “지극히 작은 자”는 누구이며, 그들을 위해 어떤 실천을 할 수 있는가?  

2. 섬김을 예배로 여기는 웨슬리의 관점이 나의 신앙생활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가?  

3.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내가 속한 교회가 지역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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