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5장 40절 John의 칼럼 -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사랑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빛이다. 마태복음 25장 40절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이웃, 특히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푼 사랑과 선행이 곧 그분께 드리는 헌신임을 분명히 말씀하신다. 존 웨슬리(John Wesley)의 관점에서 이 말씀은 단순한 도덕적 가르침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 전반을 관통하는 실천적 신앙의 핵심이다. 웨슬리는 신앙이 개인적 경건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책임과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원칙을 삶으로 보여주었다.

“지극히 작은 자”란 누구인가? 예수님은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억압받는 자를 가리키신다. 이들은 세상의 기준으로는 보잘것없으나, 하나님의 눈에는 그리스도의 형제요, 귀한 존재다. 웨슬리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모든 사람, 특히 연약한 자들에게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가난한 이들을 방문하고, 병든 자들을 돌보며,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려는 거룩한 사명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까? 현대 사회는 여전히 가난, 불평등, 소외로 가득하다. 웨슬리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문제 앞에서 무관심하거나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우리의 선행이 그분께 직접 드리는 헌신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웃에게 베푼 작은 친절, 나눔, 위로의 말 한마디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된다. 예를 들어, 이웃의 필요를 살피고,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들을 돕거나, 소외된 이들과 시간을 나누는 것은 곧 예수님을 섬기는 행위다.

웨슬리는 또한 “거룩한 생활”을 강조하며, 신앙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참된 믿음이 아니라고 경고했다. 그는 성경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교회를 꿈꿨다. 마태복음 25장 40절은 우리에게 도전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일상에서 이웃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과연 지극히 작은 자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의 시간, 물질, 마음을 나누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

이 말씀은 또한 심판의 기준을 제시한다.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우리의 믿음을 행위로 평가하신다. 웨슬리는 이 점을 깊이 깨닫고, 신앙과 행함이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그 은혜를 세상에 나누라”고 가르쳤다. 우리의 작은 선행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씨앗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이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고, 약한 자를 돕고, 정의를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한다. 이는 단지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예수님을 섬기는 기쁨이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사명이다. 웨슬리의 삶처럼, 우리도 사랑과 헌신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칼럼에 대한 질문:

1. “지극히 작은 자”를 오늘날의 맥락에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2. 존 웨슬리의 관점에서, 신앙과 사회적 책임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3. 이 구절을 바탕으로,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랑의 행동은 무엇인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마태복음 25장 40절 John의 강해 설교 -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사랑의 사역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장 40절에서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푼 사랑이 곧 그분께 드리는 섬김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존 웨슬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실제적인 섬김과 나눔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설교는 작은 자를 향한 우리의 책임과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삶을 탐구합니다.

1: 지극히 작은 자는 누구인가? (마 25:40a)

예수님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를 언급하십니다. 이는 가난한 자, 소외된 자, 고통받는 자를 뜻합니다. 웨슬리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존귀하다고 보았습니다. 작은 자는 사회적 약자뿐 아니라 영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포함합니다.  

-관주: 누가복음 10:30-37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강도 만난 자는 도움이 필요한 “작은 자”의 상징입니다. 사마리아인은 국적과 신분을 초월해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이처럼 작은 자는 우리의 편견을 넘어선 이웃입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는 누가 우리의 이웃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노숙인, 난민, 혹은 정서적으로 상처받은 이웃이 우리의 섬김을 기다립니다. 웨슬리처럼 그들을 그리스도의 형제로 대하며 사랑을 실천합시다.

2: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그리스도께 한 것이다 (마 25:40b)

예수님은 작은 자에게 한 선행이 곧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섬김의 대상이 그리스도와 하나 됨을 보여줍니다. 웨슬리는 실천적 성결을 강조하며, 사랑의 행위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고 가르쳤습니다.  

-관주: 요한일서 4:20-21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경고합니다. 이는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적용: 우리의 섬김은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교회는 물질적 도움뿐 아니라 시간을 내어 경청하고 위로하며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웨슬리의 가르침처럼,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반영합시다.

3: 섬김의 보상과 하나님의 나라 (마 25:34-40)

마태복음 25장은 최후의 심판에서 의인들이 상을 받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작은 자를 섬긴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됩니다. 웨슬리는 이런 섬김이 성결한 삶의 열매이며,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는 길이라고 보았습니다.  

-관주: 히브리서 13:16은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 여겨집니다. 작은 자를 섬기는 행위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는 실천입니다.  

-적용: 우리의 섬김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지역 사회의 필요를 돌아보고, 실질적인 도움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웨슬리의 사회적 성결 사상을 따라, 가난한 자와 함께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맺는말[Conclusion]:

마태복음 25장 40절은 우리의 신앙이 실천으로 드러나야 함을 일깨웁니다. 존 웨슬리는 성경적 사랑이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를 향한 구체적인 섬김에서 시작된다고 보았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예배이며,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맛보는 길입니다. 우리의 작은 선행이 하나님의 큰 계획 안에 있음을 기억합시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은 이것입니다: 오늘 나는 누구를 위해 작은 사랑을 실천할 것인가? 교회는 이웃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웨슬리의 열정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사랑의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 우리의 섬김은 하나님 나라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설교에 대한 질문:

1. 나의 일상에서 “지극히 작은 자”는 누구이며, 그들을 위해 어떤 실천을 할 수 있는가?  

2. 섬김을 예배로 여기는 웨슬리의 관점이 나의 신앙생활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가?  

3.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내가 속한 교회가 지역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마태복음 25장 40절 John의 말씀 묵상 -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사랑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존 웨슬리의 관점에서 이 구절을 묵상하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의 본질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은 예수님께서 심판의 날에 의인과 악인을 나누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단순한 도덕적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참된 신앙의 실천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웨슬리는 신앙이 단순히 교리나 믿음의 고백에 머무르지 않고, 사랑과 행함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웃, 특히 “지극히 작은 자”를 향한 사랑으로 증명되어야 함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지극히 작은 자”란 세상에서 소외되고,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웨슬리는 가난한 자들과 고통받는 이들을 섬기는 것이 신앙의 핵심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빈민 구제와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일에 헌신했으며, 이는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거룩한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구절에서 우리가 섬기는 대상이 바로 주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섬김의 행위가 단순한 인간적 선행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깊은 연합 속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의 표현임을 보여줍니다.

웨슬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거룩한 삶”을 추구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는 신앙이 개인적인 경건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책임과 이웃 사랑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은 이러한 가르침을 강력히 뒷받침합니다. 우리가 배고픈 자에게 밥을 주고, 헐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병든 자를 돌볼 때, 이는 곧 예수님께 드리는 섬김입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이 단순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야 함을 일깨웁니다.

또한, 이 말씀은 우리의 동기를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왜 이웃을 섬기는가? 웨슬리는 모든 선한 행위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우리의 섬김은 세상적 보상이나 인정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를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이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초대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구절은 또한 심판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행위로 평가하십니다. 웨슬리가 강조한 “실천적 신앙”은 바로 이 점에서 빛을 발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교회 안에서의 예배뿐 아니라, 세상 속에서 이웃을 섬기는 삶으로 완성됩니다. 지극히 작은 자를 향한 우리의 작은 사랑이 하나님 앞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은 큰 위로이자 도전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과연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며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의 신앙은 말과 행동으로 일치하는가? 웨슬리의 가르침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힘입어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작은 섬김이 그리스도께 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간구합시다.

말씀 묵상에 대한 질문:

1. 나의 일상에서 “지극히 작은 자”는 누구이며, 그들을 어떻게 섬길 수 있을까?  

2. 내 신앙이 말과 행동으로 일치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어떤 점을 개선할 수 있을까?  

3. 예수님께서 섬김의 대상을 “내 형제”라 하신 의미는 무엇일까?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우리에게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는 마음을 주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게 하소서. 우리의 행위가 주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하시고, 신앙과 삶이 일치하는 거룩한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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