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4편 1-2절 칼럼 - 이름을 부를 때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적이 있는가. 숨을 곳조차 없어 온 세상이 등을 돌린 것처럼 느껴질 때, 인간의 말과 힘이 모두 바닥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절망의 자리에서 다윗은 붓을 들어 기도를 시로 새겼다.

이 시편의 표제는 구체적인 역사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십 사람들이 다윗의 피신처를 사울 왕에게 밀고한 사건이다(사무엘상 23:19-29). 같은 유다 지파 동족에게 배신당한 다윗은 사방이 막힌 광야 한복판에서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히브리어로 이름을 뜻하는 '쉠'(שֵׁם, shem)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그것은 한 존재의 인격과 본질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주의 이름으로 구원하소서"는 곧 "하나님이신 당신 자체가 나의 구원이 되어 주소서"라는 고백이다.

찰스 스펄전은 이 구절을 주석하며 이렇게 썼다. "하나님의 이름은 그분의 영광스러운 본성 그 자체다. 그분의 모든 속성이 나를 위하여 작동하게 하라." 다윗의 기도는 어떤 마법 주문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전능하심에 자신의 전부를 맡기는 신뢰의 행위였다.

2절에서 다윗은 다시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라고 간청한다. 히브리어 '테필라'(תְּפִלָּה, tefillah)는 소원 목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어 드리는 깊은 기도를 뜻한다. 존 웨슬리는 기도를 은총의 수단(Means of Grace)의 핵심으로 가르쳤다. 기도는 하나님의 도움을 얻어내는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통로라는 것이다. 헬라어 '프로세우케'(προσευχή, proseuchē)가 '향하여'(πρός)와 '소원'(εὐχή)의 합성어인 것처럼, 진정한 기도는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내면의 방향 전환에서 비롯된다.

오늘 우리는 위기의 순간에 어떤 이름을 가장 먼저 부르는가. 인맥의 이름을 찾고, 권력의 힘을 빌리고, 조직의 논리에 기댄다. 그러다가 모든 것이 무너질 때 비로소 하나님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윗은 처음부터, 사울의 군대가 포위하기 전부터, 가장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그것이 신앙의 차이다.

배신과 위기가 문을 두드릴 때, 그때가 바로 이 오래된 기도를 되살릴 때다.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이 한 줄의 기도가 다윗을 광야에서 살렸고, 오늘 우리의 광야에서도 살릴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어제도 구원이었고, 오늘도 구원이며, 내일도 변함없는 구원이기 때문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이름을 가장 먼저 부르는가, 아니면 다른 것들을 먼저 의지하다가 마지막에 하나님을 찾는가? 내 기도의 순서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2.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원하소서"라는 기도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 전체에 나를 맡기는 신뢰의 고백이다. 나는 하나님의 어떤 성품을 아직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가?

3. 웨슬리가 강조한 '은총의 수단으로서의 기도'는 기도를 결과를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닌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으로 본다. 나의 기도는 관계를 추구하는 기도인가, 아니면 결과만을 요구하는 기도인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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