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3장 1절 John의 칼럼 - 너는 내 것이라 - 두려움을 이기는 소명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 말씀은 포로된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로이자, 신앙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선언이다. 인간은 언제나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실패에 대한 염려, 그리고 죄로 인한 내면의 불안은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현실 속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는 내 것이라”고 선언하시기 때문이다.
존 웨슬리는 이 말씀을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의 본질로 이해했다. 그는 신앙의 시작이 인간의 결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강조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셨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 안에 있다는 의미다. 웨슬리에게 이런 확신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더 이상 세상에 묶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랑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향해 자유롭게 헌신하게 된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라는 말씀은 단순한 보호의 약속이 아니라, 대속의 은혜를 의미한다. 구속은 값을 치르고 되찾는 행위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친히 대가를 치르셨다. 신약의 빛에서 볼 때, 이 구속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웨슬리는 이 구속의 은혜를 개인적 경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단순히 교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이 실제로 그 사랑 안에 거할 때 비로소 “두려움이 사랑 안에서 온전히 쫓겨난다”(요일 4:18)는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을 이름으로 부르셨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약함과 속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부족함 속에서도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보시고 버리시는 분이 아니라, 그 속에서 새 생명을 창조하신다. 웨슬리는 이를 “은혜의 변형(transforming grace)”이라 불렀다. 은혜는 단지 죄를 덮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새롭게 빚어내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의 음성이 아니라, 새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부르심이다.
오늘날 신앙의 길에서도 이 선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세상은 인간의 소속을 사회적 지위나 성공으로 규정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의 소유된 백성은 결코 버림받지 않는다. 우리가 그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길 때, 두려움은 사라지고 사명은 다시 살아난다. 웨슬리가 말한 ‘전심의 헌신’은 바로 이러한 확신에서 비롯된다.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우리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담대히 걸어갈 수 있다. 우리의 존재 이유는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삶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하나님께서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가?
2. 웨슬리가 말한 ‘구속적 사랑’과 ‘변형의 은혜’는 오늘날 신앙생활 속에서 어떻게 체험될 수 있는가?
3. 두려움을 이기는 신앙의 근거가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됨’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을까?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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