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편 71편 23절 John의 칼럼 - 구속된 영혼의 노래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나의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속량하신 나의 영혼도 그러하리이다"
노래는 언어가 닿지 못하는 곳까지 간다.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감격이 있을 때, 사람은 노래한다. 시편 71편의 시인은 늙고 지쳐 원수들에게 둘러싸인 채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었다. 그런데 그 끝에서 그는 절망이 아니라 노래를 꺼내 든다. "나의 입술이 기뻐 외치며" - 이것은 억지로 쥐어짜낸 종교적 낙관주의가 아니다. 구속받은 영혼에서 솟구치는 진짜 기쁨이다.
'기뻐 외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רָנַן (라난, rānan)은 단순한 미소나 잔잔한 만족이 아니라, 온몸으로 터져 나오는 환성(歡聲)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노래의 이유는 오직 하나, "주께서 속량하신 나의 영혼"이다. '속량하다'는 히브리어 פָּדָה (파다, pādāh)는 값을 치르고 종의 신분에서 자유롭게 해 준다는 뜻이다. 노래의 힘은 내 처지가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내 존재가 달라졌기 때문에 나온다.
존 웨슬리는 시편 71편 15절 주석에서 "구원과 자비의 수는 셀 수 없다(The numbers - Of thy salvations and mercies)"고 풀이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는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이다. 시인이 입술을 열 때마다 새로운 은혜가 떠오르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찬양은 의무가 아니라, 무한한 은혜 앞에서 터져 나오는 영혼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우리는 흔히 조건이 갖추어질 때 찬양하려 한다. 건강이 회복되면, 문제가 해결되면, 마음이 편안해지면 - 그때 찬양하겠다고 미루어 둔다. 그러나 시인의 노래는 고난의 한복판에서 울려 퍼졌다. 웨슬리 역시 수많은 반대와 조롱 속에서도 야외 광장에 서서 노래하며 설교했다. 그에게 찬양은 상황을 이긴 뒤 부르는 승가(勝歌)가 아니라,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붙드는 도구였다.
구속받은 영혼에게는 침묵이 어색하다. 속량의 값이 얼마나 큰지를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치르신 그 값 - 십자가 - 을 생각할 때, 입술이 저절로 열린다. 오늘 우리의 삶이 아무리 복잡하고 지쳐 있어도, 우리는 여전히 속량받은 존재다. 그 사실 하나가 노래의 이유로 충분하다.
진정한 찬양은 삶을 바꾼다. 감사의 언어를 입에 올리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선이 달라지고, 태도가 달라지고, 관계가 달라진다. 시인처럼 입술로 먼저 고백할 때, 영혼이 그 고백을 따라온다. 오늘 당신의 입술에서 어떤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는가.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어떤 조건이 갖추어질 때만 하나님을 찬양하려고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가?
2. '구속받은 영혼'이라는 정체성이 나의 일상적인 태도와 언어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3. 오늘 내 삶에서 다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한 가지만 꼽는다면 무엇인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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