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0편 5절 칼럼 - 기다림이 힘이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우리는 기다림을 싫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검색 결과는 0.3초 안에 나와야 하고, 배달 음식은 30분을 넘기면 불만족스럽다. 속도가 곧 능력이 되고, 기다림은 무능력의 증거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오늘 우리에게 전혀 다른 언어로 말을 건넨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이 짧은 한 문장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선언이 될 수 있다.

시편 130편은 이른바 '깊은 곳'에서 쓰인 노래다. 시편 기자는 죄의 무게와 삶의 고통 속에서 바닥을 친 사람이다. 그 절망의 한복판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분노도, 체념도 아니었다. 바로 '기다림'이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기다리다'로 번역된 단어는 '카바'(קָוָה, qavah, 카바)인데, 이는 단순히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새끼를 꼬듯 온 힘을 모아 한 방향으로 당기는 긴장된 기대를 뜻한다. 기다림이 수동적 포기가 아니라, 오히려 치열한 능동적 신뢰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라고 고백한다. 여기서 '말씀'은 히브리어 '다바르'(דָּבָר, dabar, 다바르)로, 단순한 정보나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의지가 담긴 살아 있는 언어다. 기다림의 근거는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바르', 곧 말씀이다. 흔들리는 감정 위에 소망을 세우면 폭풍이 올 때 무너지지만,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진 기다림은 폭풍 속에서도 오히려 깊어진다. 존 웨슬리(John Wesley)는 이 구절을 해설하면서 "나는 기다린다 - 그분이 내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이라고 기록했다. 기다림의 내용은 바로 죄 사함과 은혜였다. 절망 속에서도 은혜를 향해 닻을 내리는 것, 그것이 시편 기자의 소망이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기다림'을 결핍이나 실패로 해석한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면 하나님이 침묵한다고 생각하고, 삶이 제자리걸음을 하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불안해한다. 그러나 시편은 다르게 말한다. 기다림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그 관계 안에 머무는 가장 깊은 형태의 신뢰라고. 씨앗은 땅속에서 기다린다. 봄이 오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싹을 틔운다. 기다림은 준비이자 성장이다.

기다림에는 두 가지 자세가 있다. 하나는 결과만을 기다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분명히 말한다.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축복을 기다리기 전에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참된 기다림의 소유자다. 하나님을 기다릴 줄 아는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결과가 늦어져도, 길이 보이지 않아도, 그분을 향한 신뢰 자체가 이미 그 사람의 삶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 삶의 어느 '깊은 곳'에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가? 오래 기도해도 응답이 없어 지쳐 있는가? 기다리다 지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시편 기자의 목소리가 오늘 당신에게 닿기를 바란다. "기다려라, 그러나 혼자 기다리지 마라. 말씀을 붙들고 기다려라." 하나님의 말씀은 기다림을 끝내는 신호가 아니라, 기다리는 동안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생명의 호흡이다. 기다림이 힘이다. 그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당신이 지금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 기다림의 근거는 감정인가, 하나님의 말씀인가?

2. '결과를 기다리는 것'과 '하나님 자신을 기다리는 것'의 차이가 당신의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3. 삶의 '깊은 곳'을 경험할 때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소망을 붙들고 있는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