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편 145편 20절 칼럼 - 사랑하는 자의 특권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지켜지고 싶다는 근원적인 욕구를 품고 산다. 아이는 부모의 품 안에서 안전을 느끼고, 어른이 되어서도 사람들은 보험을 들고, 울타리를 치고, 경보 장치를 달며 자신을 보호하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보호 장치는 완전하지 않다. 시편 145편은 다윗이 히브리 알파벳 순서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한 찬양시다. 그 절정에 이 한 절이 서 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이것은 감상적인 위로가 아니라, 수천 년을 견뎌온 신뢰의 고백이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보호하시고'는 שׁוֹמֵר(쇼메르) 로, '지키다, 파수하다, 보호하다'는 뜻의 שׁמר(샤마르) 에서 온 현재분사형이다. 이것은 단 한 번의 행위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는 능동적인 보호를 의미한다. 마치 성벽 위에서 눈을 떼지 않는 파수꾼처럼,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 곁을 한 순간도 떠나지 않고 지키신다는 것이다. 그 보호의 대상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는 자 다(כָּל־אֹהֲבָיו, 콜 오하바이우)",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자'란 누구인가? 같은 시편 18절은 "진실하게 부르짖는 자들"을, 19절은 "경외하는 자들"을 말한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감정의 들뜸이 아니라 그분 앞에 나아가는 진실한 태도를 뜻한다. 존 웨슬리는 하나님의 보호가 인간의 도덕적 완전함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분을 향한 응답적인 사랑, 곧 은총에 대한 신뢰의 반응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우리가 먼저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요, 그가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에 우리도 사랑할 수 있다(요일 4:19).
반면 후반부는 냉엄하다.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 히브리어 יַשְׁמִיד(야쉬미드) 는 '소멸되다, 근절되다'는 의미로,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가 끝내 완성될 것임을 선포한다. 이것은 복수심의 표현이 아니라, 선하신 왕이 자신의 나라에서 파괴적인 악을 끝내 뿌리 뽑는다는 우주적 정의의 선언이다. 선하심과 엄위하심은 하나님 안에서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불안의 시대 한가운데 서 있다. 경제적 불확실성, 관계의 단절, 건강의 위협 앞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이 모든 불안의 한복판에서 선포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보호가 있다고. 그것은 모든 고난을 차단해 주는 방어막이 아니라, 어떤 고난 속에서도 함께하시는 임재의 보호다.
당신은 지금 무엇으로 자신을 지키고 있는가? 재산인가, 인맥인가, 아니면 자신의 능력인가. 시편 145편 20절은 조용하되 단호하게 말한다. 진정한 보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가 먼저 만든 것이 아니라, 그분이 먼저 우리에게 내미신 은총의 손길에 응답하는 것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하나님의 보호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삶의 불안 앞에서 다른 무언가에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가?
2.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감정적 체험에만 머무르지 않고 일상의 태도와 선택 속에서 어떻게 드러날 수 있을까?
3. 악인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는 이 말씀이 오늘 나에게 경고인가, 위로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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