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복음 1장 17절 칼럼 - 그물을 내려놓은 자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갈릴리 호숫가는 아침마다 비린내와 파도 소리로 가득했다. 시몬과 안드레는 그날도 어김없이 그물을 손질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것이 그들의 전부였다. 먹고살기 위한 노동, 반복되는 일상, 낯익은 바다. 그런데 그 평범한 아침, 한 사람이 그들 앞에 서서 말했다. "나를 따라오라." 두 마디였다. 설명도, 조건도, 유인책도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물을 내려놓고 따라갔다.
헬라어 원문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기록한다. "데우테 오피소 무(Deute opisō mou)." 직역하면 "내 뒤를 따라 이리로 오라"는 뜻이다. 이것은 부탁이나 제안이 아니라, 왕이 신하에게 내리는 명령과도 같은 초청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약속, "할리에이스 안트로폰(halieis anthrōpōn)", 곧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은, 그들이 가진 기술과 삶의 방식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선언이었다.
존 웨슬리는 마가복음 1장 18절을 주석하면서 이렇게 기록했다. "그들은 즉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이때부터 그들은 자신의 생업을 떠나 그분과 함께했다. 첫 번째 부르심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복되도다." 웨슬리 자신도 그런 삶을 살았다. 옥스퍼드의 안락함을 뒤로하고 광산 노동자들과 감옥의 죄수들 곁으로 나아간 그는, 생애 전체를 통해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삶을 실천했다.
이 부르심의 놀라운 점은 '준비된 자'를 찾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시몬과 안드레는 신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학식 있는 랍비도 아니었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도 아니었다. 그저 매일 바다에 나가는 어부였을 뿐이다. 예수님은 그 현장으로 찾아오셨다. 우리의 삶 한가운데로 오시는 것이 그분의 방식이다.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표현 속에는 복음의 본질이 담겨 있다. 낚시는 기다림이다. 인내다. 그리고 포기를 모르는 반복이다. 복음을 전하는 일도 그렇다. 빠른 결과를 기대하기보다, 조용히 사람들 곁에 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있어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낚음'이다. 예수님은 기적이나 권력이 아니라, 관계와 동행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셨다.
오늘 이 부르심은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나를 따라오라"는 말씀은 현재형으로 계속 울려 퍼진다. 우리 각자의 갈릴리 호숫가, 곧 직장이든 가정이든 삶의 자리 어디서든 예수님은 찾아오신다. 그물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삶의 전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떤 그물을 쥐고 있는가. 그리고 그 그물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칼럼에 대한 질문:
1. 당신의 삶에서 지금 붙들고 있는 '그물'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2. 예수님은 준비된 자가 아닌 일상의 자리에 있는 자를 부르셨습니다. 이 사실이 당신의 신앙생활에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3.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오늘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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