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서 1장 16절 John의 칼럼 - 복음, 부끄럽지 않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세상에는 숨기고 싶은 것들이 있다. 가난했던 시절, 실패했던 기억, 남들 앞에 내놓기 부끄러운 과거. 그런데 바울은 정반대의 고백을 한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이 말은 단순한 용기의 선언이 아니다. 로마라는 세계 최강의 제국 한복판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한 유대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고 서는 것이 얼마나 황당해 보였을지를 생각하면, 이 한 문장의 무게가 다르게 다가온다.
헬라어 원문은 "Οὐ γὰρ ἐπαισχύνομαι τὸ εὐαγγέλιον(우 가르 에파이스퀴노마이 토 유앙겔리온)." '에파이스퀴노마이(ἐπαισχύνομαι)'는 단순히 '부끄럽다'는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 수치와 공개적 굴욕의 두려움을 포함한다. 1세기 명예 - 수치 문화에서 이것은 목숨을 건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바울이 부끄럽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δύναμις θεοῦ / 뒤나미스 테우)'이기 때문이다. 뒤나미스(δύναμις)는 단순한 영향력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는 실제적인 힘, 영어로 'dynamite'의 어원이 되는 단어다. 복음은 인간의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직접 작동시키시는 능력이다.
웨슬리(John Wesley)는 이 구절을 주석하면서, 로마라는 세계의 중심, 곧 무대의 정중앙에서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세상의 눈에는 어리석고 미련해 보일지라도 복음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이며, 구원은 오직 그 복음을 통한 믿음으로 주어진다고 강조한다. 웨슬리 자신도 1738년 5월 24일, 올더스게이트(Aldersgate) 거리의 작은 집회에서 루터의 로마서 주석을 들으며 마음이 '이상하게 따뜻해지는' 체험을 했다. 그날의 회심은 복음의 능력이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실재임을 그에게 각인시켰고, 이후 그의 평생은 그 복음을 들고 거리와 광산과 감옥으로 달려가는 삶이 되었다.
'모든 믿는 자에게(παντὶ τῷ πιστεύοντι / 판티 토 피스튜온티)'라는 표현도 놓쳐서는 안 된다. '판티(παντὶ)'는 예외 없이 모두를 가리킨다. 유대인과 헬라인, 즉 당시 세계의 모든 민족을 아우른다. 구원은 혈통이나 종교적 배경이나 사회적 신분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오직 복음을 향한 믿음의 응답이 기준이다. 이것이 복음의 혁명성이다. 복음 앞에서 모든 담장은 허물어진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다르지 않다. 복음은 여전히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진주충만교회 성도들이 매주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오고, 기도의 자리에 무릎을 꿇고,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은, 그 복음이 지금도 살아 역사한다는 증거다. 복음은 죽지 않았다. 하나님의 뒤나미스는 오늘도 작동 중이다.
부끄럽지 않은가? 그렇다. 복음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가진 가장 자랑스러운 소식이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구원, 죽음을 이긴 생명, 절망을 뚫는 소망 - 이 모든 것이 복음 안에 있다. 바울의 고백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일상에서 복음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는가, 아니면 어떤 상황에서 복음을 숨기거나 축소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가?
2. '하나님의 능력(δύναμις θεοῦ)'으로서의 복음이 내 삶에서 실제로 변화를 일으킨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가?
3. '모든 믿는 자'라는 복음의 보편성은, 내가 복음을 전하는 대상을 제한하거나 선별하는 태도를 어떻게 교정해 주는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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