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브리서 10장 24절 칼럼 - 서로를 세우는 사랑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히브리서 10장 24절에는 깊이 새겨야 할 헬라어 단어 하나가 숨어 있다. "돌아보아"로 번역된 '카타노에오(κατανοέω, katanoeō, 강: G2657)'는 단순히 눈길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을 기울여 상대방의 형편과 처지를 진지하고 세심하게 살피는 행위를 뜻한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를 오래 눈여겨보듯, 옆에 있는 사람의 삶을 정성껏 들여다보는 것이다. 말씀은 오늘 그 진지한 시선으로 우리를 먼저 부르고 있다.
"격려하며"로 번역된 헬라어 '파로크쉬스모스(παροξυσμός, paroxysmos, 강: G3948)'는 본래 '날카롭게 자극하다'는 뜻을 가진 강렬한 단어다. 이 단어가 부정적으로 쓰이면 사도행전 15장 39절처럼 바울과 바나바 사이의 '다툼'을 가리키지만, 긍정적 맥락에서는 서로를 선한 방향으로 불꽃처럼 자극하는 것을 뜻한다. 성경은 우리가 서로에게 사랑의 불씨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 불꽃은 비난이 아니라 따뜻한 격려에서 타오른다.
18세기 신학자 존 웨슬리(John Wesley)는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종교다. 혼자만의 신앙은 성경적이지 않다"고 선언했다. 그는 속회(Class Meeting)를 통해 성도들이 매주 서로를 살피고 격려하도록 이끌었다. 웨슬리에게 이 구절은 단순한 권면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 그 자체였다. 함께일 때 비로소 완성되는 신앙의 원리를 그는 삶 전체로 증명했다.
오늘날 우리는 역사상 가장 연결된 시대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와 이어지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마음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연결은 많아졌으나 진정한 돌봄은 줄어들었다. 군중 속에서도 깊은 고독을 느끼는 것이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미 오래전에 이 문제를 꿰뚫어 보았다. "서로 돌아보라"는 그 외침이 지금 이 시대에 더욱 간절하게 들려오는 이유다.
교회는 단순한 종교 모임이 아니다. 교회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며, 손을 내미는 공동체다. 누군가 지쳐 있을 때 곁에 앉아 주고, 흔들릴 때 붙잡아 주고, 작은 선행 하나로 서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곳이다. 거창한 것은 필요 없다. 이 소박하고 따뜻한 연대야말로 히브리서가 말하는 사랑과 선행의 격려이며, 그것이 교회를 교회 되게 한다.
오늘, 당신 곁에 있는 그 사람을 '카타노에오(κατανοέω)' - 깊이, 세심하게 바라보라. 그리고 당신의 말 한마디, 따뜻한 미소, 조용한 배려가 그 사람에게 살아있는 불꽃이 되게 하라. 하나님은 거창한 방법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통해 서로를 세우신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서로를 격려하는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공동체가 된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카타노에오(κατανοέω)' - 세심하고 깊이 바라보고 있는가? 그저 바라보는 것과 진지하게 살피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2.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사랑의 불꽃 '파로크쉬스모스(παροξυσμός)'가 되고 있는가, 아니면 상처를 주는 날카로운 자극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3. 내가 속한 공동체(가정, 직장, 교회)에서 '서로 돌아보는 문화'를 세우기 위해 오늘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작고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인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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