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2장 2절 칼럼 - 예수를 바라보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결승선까지 남은 거리를 가늠할 수 없을 때, 다리에 힘이 풀리고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 사람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발끝으로 떨어뜨린다. 그러나 마라톤을 오래 해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고개를 들고 멀리 앞을 봐야 오히려 덜 지친다고 말이다. 오늘 본문은 신앙이라는 긴 여정을 앞둔 사람들에게 바로 그 시선의 방향을 알려 준다.

히브리서 기자는 앞장에서 믿음의 선진들 이름을 길게 나열한 뒤, 마치 경기장의 관중석을 채운 이들처럼 그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곧이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꺼낸다. 그 많은 증인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결국은 예수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헬라어 원문에서 '바라보자'라는 단어(아포론테스, ἀφορῶντες)는 다른 모든 것에서 눈을 돌려 오직 한 곳에 시선을 고정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여러 갈래로 흩어지던 관심을 예수 한 분에게로 모으라는 초대다.

본문은 예수를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라 부른다. 원어로는 아르케곤(ἀρχηγόν)과 텔레이오텐(τελειωτήν)이다. 앞의 단어는 길을 처음 낸 선두 주자, 뒤의 단어는 그 길을 끝까지 완성하신 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즉 예수는 믿음의 길을 먼저 걸으신 분이면서 동시에 그 길을 걷는 우리를 끝까지 붙드셔서 완성시키시는 분이다. 시작과 끝이 모두 그분 안에 있다는 뜻이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한순간의 결심이 아니라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이 구절이 그 흐름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예수를 바라보는 일은 단지 과거의 십자가 사건을 기억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붙들어 성숙하게 만드시는 그분의 은혜를 매일 새롭게 의지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고통 앞에서도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며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던 예수의 모습은, 오늘 삶의 무게에 짓눌린 이들에게 가장 실제적인 위로가 된다.

살다 보면 억울한 일, 힘에 부치는 짐,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이 찾아온다. 그럴 때 우리는 흔히 그 상황 자체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더 지친다. 오늘 본문은 방향을 바꾸라고 말한다. 상황이 아니라 예수를 보라는 것이다. 그분이 먼저 걸으셨고, 그분이 끝까지 함께 걸으신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 하루를 다시 걸어갈 힘을 얻을 수 있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요즘 내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어디인가, 그것이 나를 지치게 하지는 않는가?

2. 예수님이 '믿음의 시작과 끝'이 되신다는 말은 내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3. 지금 내가 참아 내야 할 '십자가'가 있다면, 그 너머에 있는 '즐거움'은 무엇인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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