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복음 18장 16절 John의 칼럼 - 천국을 소유한 어린 마음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예수께서 어린 아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는 장면은 성경에서 가장 따뜻한 순간 중 하나이다. 제자들은 아이들을 부모들이 데려오는 것을 귀찮은 존재로 여겨 꾸짖었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기꺼이 용납하셨다.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이런 자들의 것이라는 선언은 당시 어린이를 미성숙하거나 가치 없는 존재로 여겼던 사회적 통념을 뒤집는 혁명적인 말씀이었다.
존 웨슬리는 인간의 모든 영혼 속에 이미 하나님의 은혜가 작용하고 있음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를 선행적 은총이라고 부른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속에도 이 은혜는 이미 싹트고 있으며,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기에 가장 적합한 마음의 토양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을 갈망하기도 전부터 우리를 향해 손을 내미신다.
성도들은 흔히 어린 아이들을 그저 가르치고 훈계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곤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도리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아이들의 전적인 신뢰와 부모를 향한 전폭적인 의존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가져야 할 가장 본질적인 믿음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런 순수함을 기뻐하신다.
웨슬리는 실제로 아이들의 교육과 영적 양육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아이들이 영적으로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들을 향한 마땅한 사랑이자 교회 공동체가 짊어져야 할 거룩한 책임이었다.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던 것처럼, 신앙은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만나는 실재적인 사건이다. 아이들은 복잡한 신학적 논리 대신 직관적인 믿음으로 주님을 만난다. 그들의 단순하고 투명한 믿음은 때로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해온 성도들의 확신보다 더 견고하고 아름답다.
우리는 이제 다시 어린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상의 지위나 자신의 공로를 앞세우지 않고, 그저 주님의 부르심에 기쁘게 달려가는 순수한 순종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자격을 갖춘 자가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주어지는 값진 선물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예수께서 제자들의 꾸짖음을 멈추고 아이들을 용납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2. 선행적 은총의 관점에서 볼 때 아이들의 영적 상태는 어떠한가?
3. 성도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기 위해 회복해야 할 어린 아이의 모습은 무엇인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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